Stellarain

5화. 태양과 달의 아이(4)

alseld 2025. 2. 15. 17:01

쏴아아아아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 이따금 하늘을 긁어내는 듯한 소리가 울릴 때를 제외하면, 하늘은 별빛 하나 없이 새카만 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번쩍-

콰아앙, 쾅.

 

 

계속해서 무언가가 서로 부딪치고, 그 여파로 거대한 물체가 무너져 내리는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아마도 천둥 소리겠지.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와 섞여서 그런지 현실성이 너무 없다. 천둥이 치고 있는것이 아니라, 꼭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 하늘이 화가 잔뜩 났나보다.

 

 

콰드득, 콰아앙.

 

 

계속해서 하늘이 번쩍이고, 쾅쾅 소리가 들리는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다.

 

 

나는 천둥 소리가 점점 너무 크게 들리는 탓에, 계속 선잠을 자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콰앙! 뿌드득-

 

 

잠에서 덜 깬 탓인지, 계속 천둥소리가 울릴 때마다 더더욱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 같다.

 

 

뭔가 부서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콰아아앙. 콰직.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리는 커져가고, 소리의 크기에 비례해서 내 마음속의 두려움도 커져만 갔다.

 

 

오늘 같은 날은 어리광을 좀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더는 혼자 있기 싫은 마음에, 방 문을 열고 나와 부모님의 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삐그덕, 삐그덕, 콰앙-

 

 

“엄마, 아빠. 나 조금 무서운데 오늘은 같이 자도 괜찮아요..?”

 

 

문을 열고 조그맣게 속삭여봤지만 부모님은 깊이 잠드셨는지, 아니면 천둥 소리에 내 작은 목소리가 다 묻혀버렸는지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끼이익- 콰앙.

 

 

나는 문을 완전히 열고 부모님의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부모님의 침대는 누군가 누웠던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가신거지..?

 

 

나는 왠지 모르게 드는 불안감에, 건물 밖으로 나가 정원을 한번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콰앙. 콰드득.

 

 

그리고 내가 밖으로 향하는 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순간, 언제 천둥이 몰아쳤냐는 듯 불현듯이 숨막히는 정적이 다가왔다.

 

 

그리고 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

 

 

나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 누워있는 장면이었다.

 

 

다만, 그들 중 대다수가 신체의 일부, 혹은 대부분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내리던 비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평생을 몸 안에 소중하게 품어 온 붉은 물들이 전부 흘러 넘쳐버린것인지.

 

 

어두워서 정확하게 구분은 되지 않았지만, 정원의 바닥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여기저기 잔뜩 파여 있었고, 그곳마다 물이 잔뜩 고여 흥건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누워있는.

 

 

그 시산혈해의 가운데에서.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공중에서 스스로 회전하는 공 같은 것을 손 위에 올려둔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삼촌..? 이게 대체.."



그래. 그 사람의 정체는 비를 맞았는지 온 몸이 흠뻑 젖은 삼촌이었다.



나는 삼촌을 부르며, 홀린듯이 구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삼촌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고.



삼촌의 손 위에 떠있던 구체는 점점 가속하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번쩍-

 

 

그리고, 구체는 눈 앞이 새햐애질 정도로 밝은 빛을 발산해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콰아아앙-. 쾅.



쏴아아아-.



"허억... 헉... 헉... 또.. 이 꿈인가?"



창 밖으론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이따금 하늘이 번쩍이며 천둥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폭풍우가 치는 밤이면 어김 없이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3년 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방금 꿈속에서 봤던 그 장면을 쳐음 보게된 날부터였다.



그 날의 일은, 정말이지 묘했다.

 

 

삼촌을 향해 다가가다 구체다 발한 빛때문에 온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가, 다시 눈을 떠보니 나는 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나쁜 꿈을 꾼 것이라 여겼다. 분명 여기 저기 파여서 폐허처럼 보이던 정원도 온전하게 복원되어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 날 이후, 오늘까지. 3년동안 부모님은 집에 돌아오시지 않았다.

 

 

저택에 남아있었던건 나와 앨리스, 그리고 집을 관리해주시는 분들. 그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긴 출장을 떠나셨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갑작스레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리실 분들이 아니었다. 그 다음날이 나와 앨리스의 생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더욱.



갑자기 긴 출장이 잡혔으면 떠나시기 전에 우리를 깨워서 작별 인사를 하시거나,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편지라도 남겨놓고 가셨을게 분명하다.



또, 전날까지만 해도 생일선물로 어떤 것을 갖고 싶냐고 물어오던 삼촌에게서도 갑작스레 연락이 끊겼다.



다른 분들은 우리에게 삼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 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날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의심을 점차 확신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같은 내용의 꿈을 꾸는 것도 평범한 일은 아니었으니.

 

 

부모님은, 그리고 삼촌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걸까?

 

 

삼촌은 상아탑에서 연구를 한다고 했었으니,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면 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끼이이익-- 탁.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있다, 무언가 덜컹거리는 소리에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온듯한 감각을 느꼈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밤에 창문을 열고 밖의 풍경을 구경하다 제대로 닫지 않았었나보다. 강하게 부는 바람에, 창문이 열려서 덜컹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창문 위쪽으로 빗물을 막아주는 막이 있어서 비는 들이치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닫으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 오전 5시 46분. 



7시까지 준비 하려면 슬슬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그때문에 앨리스를 깨우기 위해, 앨리스가 잠든 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켜 앉아있던 앨리스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아, 알렉스. 일어났어? 나도 방금 천둥소리 때문에 깨버렸네.. 지금 몇시야?"



"6시쯤 됐어. 슬슬 준비하고 내려가자."



이젠 정말, 테스트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간신히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오셨군요. 간밤에 잠은 푹 주무셨습니까? 마차가 대기중이니, 바로 탑승하셔서 미드가르드 역으로 이동하시지요.”



“네, 다들 신경써주신 덕분에 푹 쉬었어요. 그런데, 1구역으로 바로 가는게 아니라 역으로 이동하는거예요?”



역은 미드가르드의 초입에 위치해있었고, 호텔은 미드가르드의 가장 깊숙한 곳. 이 도시를 1구역과 구분하고 있는 벽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벽 너머 바로 앞에 있는데, 출입구가 따로 없는건가..?



“1구역에 진입하기 전에는 반드시 수속을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수속은 미드가르드 역에서만 이루어 지고 말이죠.



바로 앞에 상아탑이 보인다고 해도, 저 벽을 바로 통과할 수 있는 권한은 상아탑 소속의 학자들에게만 주어져 있습니다.”



옥타곤 내의 모든 구역들은, 결국 그들의 필요에 의해 건설된 것이니까요. 라고 덧붙이셨다.



생각보다 보안을 더 철저하게 관리하는구나. 하긴, 우리는 지금 방문객의 신분으로 이 도시에 체류중인 것이니,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얻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다시 미드가르드 역으로 향했다.



현재 시각, 오전 7시 5분.








“외부에서 미드가르드 역으로 이동할때는 지상의 철도를 따라 오셨던건, 기억 하십니까? 하지만 옥타곤의 내부를 가로지르는 열차는 땅 아래의 전용 철도를 따라 운행합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집사님은 우리에게 역에서 수속을 밟는 과정과 테스트 장소로 이동하는 지하 열차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때문에 수속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역의 지하에 존재하고, 테스트의 당사자를 제외한 일반 방문객들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마차는 대략 30분 정도를 달려, 우리를 미드가르드 역에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역으로 진입하고, 역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초입에 다다랐다.



“이 계단을  따라 역의 지하로 내려가면, 수속이 시작될겁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모셔드릴 수 있겠군요.”



“헤헷, 고생했어 아저씨! 이제 걱정 그만 하구 마음 편히 먹고 쉬고 있어! 금방 끝내고 돌아갈테니까.”



“걱정은요. 제가 아는 두 분이라면, 아마도 바로 상아탑의 출입 권한을 얻으시겠죠. 저는 미리 입학하실 때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두고 있겠습니다.”



집사님도 참. 안 그래 보이면서 은근 팔불출에 성격도 급하시단 말이야.



항상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를 사용하시지만, 이런식으로 이따금 드러나는 조급함에서 우리를 생각하시는 집사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부드러운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너무 급하게 준비하실 필요 없어요, 집사님. 테스트가 끝나더라도 입학식까지 아직 한달이나 남았잖아요. 저희 챙기시느라 신경 많이 쓰시고 피곤하실텐데, 오늘 하루라도 푹 쉬고 있으세요. 테스트 금방 끝내고, 호텔로 바로 돌아갈게요”



“......예. 추한 모습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두 분보다 제가 더 긴장한 것 같군요. 그럼, 먼저 호텔에 돌아가 테스트를 마치시고 드실 식사를 준비해두고 있겠습니다.”



테스트는 반드시 공복의 상태로 받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아무것도 챙겨먹이지 못하고 우리를 보낸다는 점에 계속 마음이 쓰이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자리를 비우신 지난 3년 동안 너무 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도, 이런 집사님이 우리 곁을 계속 지켜주셨기 때문이었겠지.



“그럼, 다녀올게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집사님을 뒤로 하고, 우리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 시각, 오전 7시 40분.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리쯤까지 올만한 높이의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 틈 사이마다 줄지어 서 있었고, 오른쪽의 기둥에 손바닥을 한번 댄 후 기둥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기둥에 손을 댈 때마다, 삑-. 삑-. 하는 소리가 나는걸 보니, 저렇게 손바닥을 대서 출입 권한을 식별하는 것 같았다.



“이건 또 처음 보는 풍경이네.. 티켓같은건 따로 필요 없을거라더니, 접수할때 티켓을 우리 몸에 심어뒀던건가? 으으-. 조금 소름 돋는데.”



앨리스의 말이 정확한 것 같았다. 아무런 장치도 없이 사람을 식별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접수 열차에서 입자로 분해되어 우리의 온몸을 훑고 사라져버린 티켓이 사실은 우리 몸 속에 남아있어서 식별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느덧 우리 차례가 왔고, 기둥마다 “오른쪽의 기둥에 손바닥을 대 주세요”라고 적힌 글자가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오른쪽 기둥에 손을 댔고, 손을 대는 동시에 삑-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