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태양과 달의 아이(6)
끝없이 펼쳐져있는 검푸른빛의 수평선과, 실제 달보다 조금 더 차갑게 느껴지는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은 보름달.
광활한 풍경에서 압도감을 느끼기 보다는, 오래전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온듯한.
그 약간의 낯섦이 묻은 편안감에 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리자, 두 발이 수면을 딛고 서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물 위에 서있는건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눈에 비치는 이 광경 자체가 너무 생소하고 신기해서 자꾸만 발을 굴러보게 됐다.
찰박- 찰박-.
분명 바닥에 발을 구르고 있는 것일텐데 발이 수면에 닿을때마다 물이 튀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에테르 페르소나 시뮬레이션중… 현재, 가장 높은 적합도를 보이는 페르소나는 달, 그리고 물 입니다.]
테스트중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신나서 점점 더 발을 크게 구르다가,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 깜짝 놀라 중심을 잃어버리고 엉덩방아를 찧어버리고 말았다.
아야야.. 근데, 생각보다 충격이 너무 없는데..? 이거, 지금 내가 환영을 보고 있는게 맞는건가?
누군가 지켜보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급격스럽게 창피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통제 유형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정자세로 서서, 손을 앞으로 뻗어주세요.]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얼른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잡고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내가 손을 뻗은 곳 앞에서 물이 중력을 거슬러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회오리치면서 물기둥이 하늘로 점점 높아지더니, 어느정도 높이까지 다다르자 물기둥이 더이상 몸집을 불리지 않고 멈췄다.
그 상태로 잠깐 유지되다, 위쪽의 물은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쪽의 물은 위로 올라가서 허공에서 회전하며 떠있는 하나의 물 구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물의 구체는 조금씩 앞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기 시작하더니.
가속이 붙어 점점 빠르게 낙하하다, 결국 꽤나 빠른 속도로 수면과 충돌했다.
구체는 충돌과 동시에 폭발하며, 그 여파로 거대한 파도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있는 방향을 포함해서.
나를 향해서 다가오는 저 파도는 원래 서있던 방의 층고보다 다섯배정도는 더 높아보였다.
……이거 진짜 실제 상황 아닌거 맞겠지..?
파도는 빠르게 나에게 접근해 나를 집어삼킬듯이 들이닥쳤고, 그 압도적인 질량의 유동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을수밖에 없었다.
[통제 유형 테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통제 유형은 ‘순수형’ 입니다. 모든 테스트 종료. 곧, 최종 결과가 안내됩니다.]
눈을 감고 난 후, 이쯤 되면 파도가 내 몸을 집어삼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런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고. 곧이어 테스트가 끝났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니, 처음 들어왔던 방의 중앙에서 마법진 위에 그대로 서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다행히 환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실감이 나는 환영이라면 현실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을정도였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낸걸까 궁금증이 들기도 했고.
아직도 심장이 터질듯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던 중,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알렉시온 스텔라레인. 최종 테스트 결과를 안내해 드립니다. 저항력 테스트, 통과. 인지 및 추론력 테스트, 통과. 페르소나 적합도, 달 98%. 물 97%. 통제 유형, 순수형. 종합 평가 등급. A+.]
아.. 최종 결과가 나왔구나. 목소리가 들려주는 내용으로만 봤을때는 통과일 것 같은데. 그런데 저항력 테스트? 그런걸 진행을 했었나?
[축하드립니다. 아카데미 입학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질문해주십시오.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통과했다는 확답을 들으니 마음이 한층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질문이라.. 테스트가 진행되기 전 제공받은 정보가 너무 없어서, 사실 결과에 대해서 들었을때도 정확하게 어떤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지금 말로 물어보면 되는건가?
“저항력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하셨는데, 테스트의 내용이 정확하게 어떤것이었는지 물어도 될까요? 그런 테스트를 받은 기억이 없어서요.”
딱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거나 무언가 하라는 지시도 없었기에, 그냥 소리내어 입으로 질문을 해 봤고.
곧바로 대답이 머릿속으로 울려왔다.
[모든 테스트 대상자들은 접수 당시 2개의 마법에 노출됩니다.
하나는 본 테스트 장소의 지형과 위치를 입력하는 정보 전달 마법,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역에서 이루어지는 수속과 관련된 정신 조작 마법입니다.
두 번째 마법에 노출될 경우, 노출된 순간부터 수속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정해진 패턴대로 행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저항력 테스트는 이런 정신에 대한 간섭에 대해 최소한의 면역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테스트입니다.
결론적으로, 수속이 이루어지는 첫 번째 관문이 정신 조작계열 마법에 대한 저항력과 인지 및 추론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테스트였습니다.]
아아, 그런거였구나. 접수를 마치고 호텔에서 집사님을 만났을 때 답지 않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셨던 것도, 수속에 대해서 전혀 아는게 없다는 듯 질문했을 때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셨던 것도.
다 이 저항력 테스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접수 당시에 머릿속으로 정보가 주입될 때 이상할정도로 큰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 또한 이 테스트와 관련이 있었겠지.
그럼, 1차 테스트 당시에 열차를 탔던 사람들은 전부 정신 조작 마법에 걸려서, 정해진 행동을 하고 있었던 건가.
어딘가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싶어서 실제 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실제 사람들은 맞았던거였구나.
왠지 오싹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그 저항력이라는게 아카데미에 입학하는데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면 효과적인 테스트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페르소나와 통제 유형은 어떤걸까요? 제가 본 환상과 관련이 있는건가요?”
나는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을 이어서 했고, 답변은 곧바로 들려왔다.
[쉽게 설명하자면, 페르소나 적합도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잠재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테스트 당시 보여드린 장면은, 잠재력을 최대한 폭발시켜 성장했을 때 당신의 능력이 어느정도일지를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통제 유형은, 그 잠재력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분류한 유형입니다. 순수형은 페르소나로 변형시킨 에테르를 그 상태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시간 제한상 정확한 설명은 드리기 어렵습니다. 아카데미 입학시 제공되는 기본 정보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니, 그것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내 잠재력,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이라..
시간 제한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5분 안에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 그것들에 따라서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내용이 정해지는 건가요?”
[네, 기본적으로 1년차에는 공통 커리큘럼이 진행되며 2년차부터는 개인의 테스트 결과에 따른 개별 커리큘럼을 제공합니다.
물론 본인이 원하는 계열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본 테스트의 신뢰도는 99.998% 이상입니다. 제공되는 커리큘럼을 그대로 이수하시는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렇구나.. 그럼, 나는 물과 달의 힘을 다루는 방법들을 배우게 되는건가?
물을 다루는 것은 테스트 당시 보여준 환상으로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는데, ‘달’을 어떤식으로 다룬다는건지는 전혀 감이 오지를 않았다.
“달을 다룬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요.”
[달은 직관적인 물질과 관련된 페르소나는 아닙니다. 때문에 단독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사용자의 해석에 따라 여러 의미를 부여하는것이 가능하며, 대표적으로는 위상에 따른 순환과 시간, 조석력, 이면성 등의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 어느정도 감은 오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 또한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면 더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겠지.
그렇게 궁금한것들을 질문하다 보니 시간이 꽤나 빠르게 흘렀다.
[질의응답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최종 절차를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해주세요.]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들어온 문의 반대쪽 벽이 갈라지더니 앞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를 따라서 조금 직진하다 보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방에 들어가기 전처럼 여러 통로들이 하나로 모이는 복도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그 복도에 진입함과 동시에, 복도와 이어진 십여개의 통로에서 각각 한 사람씩 걸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나온 곳 바로 옆에 위치한 통로에서는 앨리스가 걸어나왔다.
“앗, 알렉스다!”
앨리스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검지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 반가운건 알겠는데 목소리좀 조금만 줄여서 불러주면 안 될까..?
사람들이 우리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내 이름을 알아버렸을 것 같다.
복도는 한쪽 끝이 막혀있어서, 다들 뚫려있는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헤헷, 역시 알렉스도 통과 했구나? 알렉스는 어떤거 나왔어 어떤거?”
앨리스가 냉큼 내 쪽으로 달려오더니, 나를 가리키던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물어왔다.
그, 페르소나였던가? 그걸 물어보는 것 같은데.
나와 앨리스도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달이랑 물. 유형은 순수형? 이라고 했던 것 같아. 앨리스는?”
앨리스는 내 말을 듣더니, 기세 등등하게 어깨를 쭉 펴고 거들먹 거리면서 말했다.
“뭐야, 알렉스는 2개밖에 없어? 나는 태양이랑 빛, 그리고 하나가 뭐랬더라..? 융합? 아무튼 그거까지 3개나 있었다구!”
네-네-. 아무렴요.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유형에 관한 이야기는 은근슬쩍 빼먹은 것 같은데.
“유형이 어떤건지도 말해주지 않았어?”
내 물음에, 앨리스는 한껏 부풀어올랐던 어깨를 다시 쪼그라트리며 자신감 없게 대답했다.
“맞아… 촉매형? 뭐 그런거였던 것 같은데. 멋 없게 촉매가 뭐야 촉매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잖아..”
촉매형? 그게 뭔지는 알고 실망스러워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말로만 들어서는 어떤 느낌인지 정확하게 감이 오지 않았다.
순수형이 그대로 사용하는거라고 했으니까, 촉매형이면 촉매로 사용을 하거나 촉매를 통해서 한번 더 변환을 시키거나 뭐 그런식으로 사용하는건가..?
“촉매형? 그게 뭔지는 물어봤어?”
“아니? 막 모르는 단어로 뭐라 설명해주길래 그게 뭔지 다 알아야 하는거냐고 물어봤더니 입학하면 다 알려주니까 몰라도 된다던데? 그래서 그냥 5분동안 앉아서 쉬다가 왔어!”
… 그래. 앨리스는 앨리스다운 질문을 했겠지. 오히려 내가 앨리스한테 의미없는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앨리스와 테스트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복도를 따라 쭉 이동하다 보니, 커다란 문이 하나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