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도 안 돼.. 정말로..?"
앨리스의 목소리를 듣고, 삼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적잖이 당황한듯 보였다.
앨리스는 순간 멈칫 하더니, 삼촌에게 달려가 품에 폭 안겼다.
삼촌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은 채 관성적으로 앨리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다 반쯤은 안도감이, 반쯤은 절망감이 섞인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삼촌도 머릿속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어떻게는 우리가 할 말이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삼촌??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아 있으면서, 그동안 왜 아무 연락도 없었던건데? 그리고, 대체 왜 아무도 삼촌에 대해서 기억을 못 하는거야??"
앨리스는 그새 눈가가 촉촉해진 상태로, 삼촌에게 우다다다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아빠도 그렇고, 삼촌도 그렇고. 대체 우리한테 왜 그런거야... 엄마랑 아빠도, 무사하게 잘 있는거 맞지? 그치 삼촌?"
나는 홀린듯이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 둘을 향해 다가갔다.
삼촌을 만나게 되면 하고싶었던 말도, 묻고싶었던 것들도 턱끝까지 가득 차올라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말로 이렇게 삼촌을 마주하게 되니 두 입술이 딱 붙어서 벌어질 생각이 없었다.
"삼촌이 미안해.. 미안해.. 우리 예쁜 조카들, 삼촌이 너무 미안해.."
삼촌은 어느새 품에 안긴채 펑펑 울고있는 앨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췄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삼촌의 눈가에는 극심한 피로감이 가득차있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삼촌..? "
드디어 입술이 떨어졌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부 담고 있는 말은 아니었다.
어떤 마음인지 안다는 듯, 삼촌은 쓴 웃음을 지으며 연구실 가운데에 위치한 소파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일단, 둘 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 우리, 할 이야기가 참 많지?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네."
"그러니까, 지금 삼촌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상태라는거야?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일단 우리만 해도 삼촌에 대해서 전부 기억하고 있잖아!"
"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세계의 기억>에서 기록이 말소됐다고 해야겠지. 혹시, 아까 내가 이름을 소개할 때 어떻게 들렸었는지 기억하니?"
"그야 당연히 ㅁㅁㅁㅁ.. 어..? 뭐야..? 왜 이래? ㅁㅁㅁㅁ, ㅁㅁㅁㅁ ㅁㅁㅁㅁㅁ!"
앨리스는 그렇게 한동안 삼촌의 이름을 소리내어 발음해보려 애썼지만, 소리 자체가 울리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분명, 삼촌이 자기 이름을 소개할때도 이름은 들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입으로 삼촌의 이름을 소리내 발음해 보려 시도해봤지만, 앨리스와 삼촌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건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입으로 발음하는건 왜 불가능한거지..?
"대충 달의 신의 성물을 사용한 대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희 말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떠올리며 내 이름을 발음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와 만나서 대화를 했던 사실 자체를 전혀 기억하지 못 해."
"성물..? 혹시 그럼, 그 비가 잔뜩 오던 날 손에 들고 있던 구체같은게 그 성물이야?"
"맙소사.. 그러고보니, 그때 알렉스는 그 자리에 있었지..? 그 광경을 다 기억하는거야? 어쩐지.. 우리 말랑말랑하던 알렉스가 어딘가 딱딱해져버렸다 싶었어. 이 삼촌은 너무 슬프구나. 흐흐흑-."
삼촌은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우는 시늉을 했다. 저러는 거 보면 확실히 우리 삼촌이 맞네 저 사람.
그리고, 역시.. 그 날의 기억은 꿈이 아니었던게 맞았구나.
"역시, 꿈 같은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맞았구나. 그래서, 그게 우리를 보면서 초면인 것처럼 자기 소개를 했었던 이유인거야? 어차피 기억 못 할 테니까?"
"그래. 너희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어. 사실, 내심 그러길 원했고.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지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서, 둘이 걷고있던 통로의 좌표를 좀 조정했지. 잠깐이라도 좋으니, 직접 만나서 목소리라도 듣고싶어서.
그러다 혹시라도 너희의 기억에 어색한 점이 남을 수도 있으니, 초면인것처럼 자기소개를 한거고."
"우리가 삼촌을 알아보지 못하길 원했다고..? 대체 왜?"
"그야, 나를 <아카식 레코드>에서 말소시킨 힘 자체가 달의 신의 성물로부터 나왔으니까. 이게 꽤나 절대적힘이거든? 그런데 너희가 나를 기억한다는건, 그 성물의 힘이 너희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야."
"응..? 그게 왜 문제가 되는건데..?"
"신의 성물이 통하지 않는다는건, 최소한 그것과 동등한 격을 갖추고 있다는걸 의미해. 심지어 기록과 역사 그 자체에 관여하는 이 성물의 힘은, 다른 신들의 기억마저도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력하지.
이 성물로부터 자유로운건 태양의 신과 달의 신. 단 둘 뿐이었어."
"...... 그렇다는건."
"그래. 너희가 바로, 달의 신 스칼루나가 남긴 마지막 안배라는 뜻이겠지. 그건 너희가 태양과 달의 신의 유전 정보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뜻이야."
"미안, 삼촌. 나 진짜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겠어."
앨리스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도리질 치며 말했다.
"너희가 두 신의 힘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라는 말이야. 제발, 너희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신이시여, 하필.. 이 어린 아이들을, 저 끔찍한 전쟁터로 내몰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어.. 음... 삼촌, 앨리스는 그렇게 말 해도 여전히 못 알아들을 것 같은데.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 듣겠는데.. 앞의 설명이 너무 부실한 것 같아, 삼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 전쟁터로 내몬다는건, 또 무슨 말인데? "
혼자서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중얼거리던 삼촌은 그 말을 듣더니, 정신을 차린 듯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아, 그래. 지금까지 너무 내가 처한 상황에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네. 그럼 지금부터, 이 세계의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해줄게."
먼 옛날. 역사가 기록되기 전.
세계를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해낸 일곱 영웅이 있었다. 그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신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일곱 신들은 이 세계가 다시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세계를 여섯개의 대륙으로 구분하여 각자의 권능을 사용해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태양의 신과 달의 신. 두 쌍둥이 신은 중앙 대륙에 상아탑과 인공 태양을 세워 모든 학자들을 포용해 지식의 요람을 만들었다.
꿈과 죽음의 신은 서쪽 대륙에 영원한 축제와 안식의 땅을 만들었다.
대지와 생명의 신은 거대한 나무를 싹틔워 남쪽 대륙의 사막을 녹지로 물들였다.
불과 제련의 신은 북쪽 대륙의 혹한의 대지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풀무불을 피워냈다.
바람과 자유의 신은 동쪽 대륙을 자신의 권능으로 천공으로 띄워 올렸다.
공간과 조화의 신은 전 세계를 잇는 공간을 창조하고, 그곳에서 절대적인 기준에서 판결을 내리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렇게 일곱 신의 통치 아래, 세상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신으로 군림하는 그들은 막강한 권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멸을 누리지는 못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명이 다 해가는 것을 느끼며, 또 다시 세계가 혼란에 빠지리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온 세계에 자신들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인간들 중 에테르를 다룰 수 있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한적이게나마 신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인간들. 그 덕분에, 인간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는 신들이 뿌려둔 씨앗이 빠르게 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일련의 시스템을 설계했다.
바로 상아탑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일정 나이에 다다른 전 세계의 아이들을 전부 상아탑으로 불러 모아서 신의 권능, 에테르를 사용하는데 적성을 보이는 인간들을 선별해냈다.
그리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시설, 아카데미를 설치했다.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선별된 인간들 중 가장 적합도가 높은 인간들을 따로 모아, 자신들의 지식과 기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억이 완전히 동기화 되는 순간, 공간과 조화의 신의 권능으로 그들의 육신을 빼앗았다.
그렇게, 신들의 영혼은 인간들의 육신을 빌어 오랜 시간 계승되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설계한 시스템은 언뜻 보면 완벽해보였다. 영원히 세계를 통치하며, 그들만의 평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듯 해 보였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일까. 일곱 신 사이에서도 의견의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태양의 신과 달의 신. 그들은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능력과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상아탑을 세웠던 본래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나머지 다섯 신을 제거하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소리 없는 전쟁을 준비했다.
허나, 일곱 신들이 서로를 너무 잘 알고있다는 사실이 두 신의 패착이 되었으리라.
신들의 리더이자, 주신으로 추종받는, 공간과 조화의 신은 처음부터 그들이 배신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안배를 남겨놓기 위해 가장 약해진 틈을 타 총 공세를 퍼부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태양의 신이 사망하고 달의 신은 쫓겨나듯이 숨어들었다.
하지만 이 날의 전투로 인해, 다섯 신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다음 전투에서 달의 신이 준비한 마지막 한 수로 인해 모든 신들이 자신의 영토에서 발이 묶이게 됐다.
그 결과 신들이 직접 움직이지 못하게 된 탓에, 그들은 차선책으로 반쯤 동기화가 완료된 계승자들을 움직여 전쟁을 이어가게 된다.
다섯 신들은 태양의 신과 달의 신이 남긴 마지막 계승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스텔라레인 가문을 멸족시키기 위해 모든 가용 병력을 동원했다. 하지만 역대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는 헬리오스 스텔라레인에 의해 오히려 모든 계승자들이 몰살당하게 된다.
그리고 달의 신의 성물을 사용하여, 계승자라는 집단의 존재 자체를 신들의 기억속에서 지워버리게 된다.
신들을 대상으로 그 성물의 힘을 사용한 반동으로, 헬리오스 스텔라레인 또한 아카식 레코드에서 말소된다.
그리고 3년이 지나 현재. 모든 계승자들이 제거된 탓에 상아탑에는 더이상 신들의 간섭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전과 같은 인재 발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달의 신이 남긴, 두 신의 안배들을 물려줄 계승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그 계승자가 달의 신이 벼려낸, 모든 신들을 죽이기 위한 회심의 칼날이 되리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의지를 계승하기 위해 태어난 태양의 아이와 달의 아이가, 그들의 안내를 맡은 반란군 최후의 생존자와 마주하게 됐다.
'Stellar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화. 일곱 신(1) (1) | 2025.03.13 |
---|---|
10화. 태양과 달의 아이(9) (0) | 2025.03.10 |
8화. 태양과 달의 아이(7) (0) | 2025.03.05 |
7화. 태양과 달의 아이(6) (0) | 2025.02.20 |
6화. 태양과 달의 아이(5) (0) | 2025.02.18 |